cindy24 2019. 8. 23. 07:40

  4. 휘슬의 권유

 

  백작님께서 직접 마차를 준비해주신 덕분에 휘슬씨와 나는 마차를 타고서 편하게 마을로 귀성하게 되었다. 마차에서 내리자 마을 사람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져 있음을 느꼈다. 마치 그랜트를 보는듯한 동경의 눈빛들이 나를 비추자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단순히 거대한 마차를 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눈빛들을 뒤로 한 채 집으로 돌아가려고 발걸음을 뗐다.

 

  “잠깐 기다리게, 그린.”

 

  휘슬씨의 말에 멈칫하며 돌아서자, 휘슬씨는 의외의 제안을 꺼냈다.

 

  “자네, 나에게 검을 배워보지 않겠나? 나는 자네가 여러모로 마음에 든다네. 그리고 앞으로 용사 일행과 함께 여행을 떠나려면 가벼운 호신술 정도는 필요하지 않겠나.”

 

  나는 휘슬씨의 말에 잠시 생각에 빠졌다. 휘슬씨 말대로 용사 일행과 함께 움직이면서 적어도 내 몸뚱이 하나는 지킬 수 있는 실력이 필요했다. 명목상 짐꾼으로 함께하게 되었지만 짐꾼으로 움직이면서 내가 직접 짐이 될 필요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감사하다며 깊게 인사를 올리며 대답했다. 그런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휘슬씨는 호탕하게 웃으며,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함께 휘슬씨가 묵는 여관으로 이동하자고 권했다. 그리고 여관에 마련된 식당에 앉아 많은 음식과 술을 시켰다. 많은 주문에 술이 먼저 자리에 도착했고, 휘슬씨는 목이 말랐었는지 시원하게 술을 들이켰다. 휘슬씨는 나를 향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시작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내 멋대로 한 결정에 대한 사과를 하겠네.”

 

  휘슬씨는 그렇게 말을 마치고는 다짜고짜 나에게 고개를 숙였고, 나는 크게 놀라며 휘슬씨를 일으켜 세웠다. 그런 나와 눈을 마주한 휘슬씨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옆 마을에서 출발하기 전에 그랜트에게 미리 부탁을 한 것이 하나 있네. 나는 자네를 자네의 아버지에게서 돈을 주고 사들였어. 자네가 불쾌하게 여길 수도 있네. 하지만 이것은 며칠간의 일도 그렇고, 앞으로의 여행을 위해서이기도 했네.”

 

  며칠간 휘슬씨가 나에게 쓴 돈만해도 우리 마을 같은 작은 마을에 거대한 집 정도는 살 수 있을 만큼의 큰돈이었다. 휘슬씨는 나와 만날 때마다 ‘괜찮은 청년’이라고 말해주었지만, 어느 부분이 그의 마음에 들은 건지도 잘 모르겠다. 더불어 한낱 농사꾼에 불과한 나를 위해 거금을 사용할 정도라는 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곤란한 표정을 해보이며 휘슬씨의 말을 기다렸다.

 

  “사람을 산다는 건 그렇게 좋은 일이 아니지만, 자네가 그동안 가족에게 어떤 대우를 받아왔는지 자네의 상처를 보고 알았네. 그 상처를 보고서 한 충동적인 행동이긴 하나, 자네는 이제 개인적으로는 내 제자고, 대중적으로는 용사 일행의 일원이네. 그런 자네가 더 이상 가족들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함부로 대우 받는걸 참을 수 없었네. 하지만 이건 다 내 이기적인 욕심에 의한 것일 수 있네. 내 멋대로 일을 진행해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다시 나에게 고개를 숙인 휘슬씨가 다시 고개를 들기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했다. 휘슬씨의 따뜻한 배려에 눈물이 처량 맞게 흘러내렸기 때문이었다. 내가 나이 값도 못하고 훌쩍이며 울자, 그 소리에 고개를 든 휘슬씨는 내 눈물을 가볍게 닦아 주고는 음식이 식기 전에 함께 먹자며 자상하게 말했다. 휘슬씨와 대화를 나누던 그 짧은 사이 식탁에는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 음식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과분한 음식에 어쩔 바를 모르고 있자, 휘슬씨는 앞으로의 훈련을 가혹할 테니 배를 가득 불려놓는 게 좋을 거라며 농담을 덧붙였다. 덕분에 긴장이 풀린 나는 따뜻한 음식에 위로를 받았다. 나는 그날 이후로 휘슬씨를 스승님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