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dy24 2019. 8. 23. 07:43

  6. 일행의 출발

 

   “우리는 여신의 가호를 받아,”

 

  드디어 용사 일행이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 신전은 출발을 축복한다는 명목으로 거대한 퍼레이드를 준비했다. 신전에서 축하 기도와 축하사를 읊고 신전에서 준비한 화려한 마차에 신녀를 태우는 것이 전부인 허례의식만 가득한 퍼레이드였음에도 신전은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한참을 기도와 축하사가 읊어질 때 마을의 사람들은 그동안의 행위로 원망이 가득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봤지만, 신전측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이동하는 건 그랜트와 스승님, 그리고 나뿐이었다.

죄책감만 가득한 불편한 자리임에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신전과 가해자들은 더욱 당당해했다. 마차로 이동하면서 신녀는 도도한 표정으로 가볍게 손을 흔들었으며, 가해자들은 큰소리로 왁자지껄 떠들며 마을 사람들을 무시했다. 퍼레이드가 끝날 동안 우리 세 사람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신전에서 준비한 퍼레이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 마을 사람들 뿐 아니라, 마법협회도 마찬가지였다. 마법협회에서 파견한 마법사는 협회에서 준비한 마차에서 내리지 않고 출발을 기다리겠다고 했고, 내심 마법협회가 축하 퍼레이드에 끼지 않길 바랬던 신전측은 옳다구나하며 그 제안에 응했다. 덕분의 마을 사람들의 원망을 피해간 것은 그녀뿐이었다.

  신전이 신녀를 위해 개인적으로 준비한 마차와 시종들, 그리고 그에 지지 않게 마법협회에서 개별적으로 준비한 마차와 시종들이 함께하는 이동 행렬은, 마치 귀족집안 자제의 나들이를 연상하게 했다. 난봉꾼 두사람은 마법으로 비행하며 화려한 모습으로 이동했으며, 그들의 뒤에서 말을 타고 이동하는 우리에, 스승님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 파티에서 제대로 된 건 우리밖에 없는 것 같구만.”

 

 

**

 

 

  이동인구가 많기 때문에 원래 계획과는 다르게 첫 소도시에 도착도 못하고 야숙을 하게 되었다. 야숙을 하게 된다는 소식에 신녀도 마법협회의 마법사도 마차에서 내릴 생각을 하지 않고서 시종들의 시중을 받았다. 난봉꾼 두 사람은 버릇을 못 고치고 이젠 마법협회의 사람들에게 치근덕거리기 시작했다.

  복잡한 마음으로 우리가 먹을 음식을 준비하던 나는, 갑자기 섬뜩한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거대한 오우거 몇 마리가 위엄을 자랑하고 있었다. 음식냄새와 사람냄새를 맡고 몰려든 오우거들이었다. 나는 서둘러 칼을 뽑고, 큰 소리로 외쳤다.

 

  “몬스터가 나타났다!”

 

  원래라면 신전에서 결계를 펼쳐 몬스터에 대비해야 했지만, 인원이 많다는 이유로 신전의 마차 근처에만 작게 결계를 치고 있었다. 마법협회의 마차는 전투를 외면했고, 난봉꾼 두사람은 그랜트를 향해, “용사라며, 겨우 오우거 몇 마리 못 해치운다고 징징거리는건 아니겠지?”라며 한껏 비꼬았다. 그리고는 오우거가 등장하건 말건 마법협회의 사람들에게 하던 추행을 멈추지 조차 않았다. 그랜트는 그들의 모습에 이를 악물었다. 스승님은 내게 소리쳤다.

 

  “그린, 잘 듣게! 몬스터와 가장 가까이 있는 자네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해!”

 

  나는 스승님의 목소리에 정신을 가다듬고 칼을 억세게 쥐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전투에 임했다. 음식냄새로 인해 내 주변에는 가장 많은 오우거들이 밀집해있었다. 그랜트와 스승님은 서둘러 내 뒤에 자리 잡고 함께 싸웠다.

 

  “꺅!”

 

  신녀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비록 크기가 작긴 했어도 결계가 쳐있는걸 알아본 오우거 몇이 신녀가 쳐놓은 결계를 찢었기 때문이었다. 결계가 사라지자, 신녀의 시종들은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신녀의 곁을 떠나 도망치기 시작했고, 마차에 홀로 남은 신녀는 비명을 지르며 울먹였다. 마법협회나 난봉꾼들은 신녀를 도울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을 방어할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스승님이 다급하게 신녀 곁으로 달려 오우거들에게 칼을 겨눴다.

  다행이라면 다행일지, 오우거 떼가 많지 않아 금방 진압되었다. 몸에 묻은 오우거의 피를 대충 닦아낸 스승님은 신녀를 향해 달려갔다. 신녀의 마차는 엉망이 되었고, 그녀를 따르던 시종들은 모두 도망을 쳤다. 신녀는 모닥불에 홀로 앉아 담요를 덮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홀로 남은 신녀를 보며 출발 전 스승님이 신전 사람들을 보며 한 말이 떠올랐다.

 

  “신녀라고는 하지만 아직 15살의 어린아이에 불과하지. 나는 그 아이가 안쓰럽다고 생각하네. 신전에서 아이의 눈을 가리고 있었기에 세상과 마주하면 분명 충격을 받을거네.”

 

  스승님의 예견대로 몬스터와 대우한 신녀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신녀를 향해 마법협회의 사람들은 한껏 비웃으며 신전을 모욕을 줬지만, 신녀는 그들의 비아냥도 들리지 않는지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런 신녀를 위로해주는 것은 스승님뿐이었다.

  그랜트는 의기양양해진 마법협회 사람들 몇과 잔당이 없는지 확인하러 이동했고, 나는 준비했던 옷 중에 가장 낡은 옷으로 대충 피를 닦아 내고 스승님의 곁으로 이동했다. 내 인기척에 소스라치게 놀란 신녀는 스승님의 손을 꽉 쥐고 놓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다독이며 스승님이 다정하게 말했다.

 

  “진정하게. 내 제자인 그린이야.”

 

  나를 제자라고 소개하자 신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게 물었다.

 

  “당신, 시종 아니었어요?”

 

  신녀는 자신이 말하고 창피해졌는지, 얼굴이 한껏 발개져서는 자신의 발언을 사과했다. 그리고 덧붙여 나를 그랜트의 시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며, 정말 미안하다고 그녀는 고개까지 숙이며 말했다. 나는 괜찮다며 그녀를 일으켜 세웠고, 그때 내 팔에 난 상처를 보고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말했다.

 

  “당신, 팔이!”

 

  신녀가 가리킨 것은 내 왼쪽 팔에 난 가벼운 부상이었다. 오우거와 대치하며 바닥에 구르고 나무에 슬기며 난 자잘한 부상에 불과했지만, 그녀는 마치 내가 큰 부상이라도 당한 것같이 소리를 질렀다.

 

  “작은 부상이라고 괜찮을 리 없잖아요!”

 

  단호하게 말하던 그녀는 신성력을 이용해 내 팔을 치료해주었다. 그녀의 신성력으로 전투 중에 생긴 자잘한 부상들이 나아갔다. 나를 치료해주는 그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스승님은 가볍게라도 허기를 채울 육포를 몇 개 가져오겠다며, 아직 신녀가 많이 불안해하니 잠시만 같이 있어주라며, 내게 조용히 귓속말을 했다.

  한차례 태풍 같던 치료가 끝나고, 모닥불 앞에서 신녀와 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서로 모닥불만 바라보며 말을 아꼈다. 아직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신녀는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해보였고, 오늘 몬스터와의 조우는 내게 있어서도 충격적인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칼을 쥐었던 손을 쥐었다 피며, 아까의 전투를 되새겼다.

  갑자기 내 어깨에 닿는 느낌에 놀라 고개를 돌리자, 모닥불이 따스함에 잠에 든 신녀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던 나는 신녀에게서 떨어지려고 했지만 그새 돌아온 스승님이 나를 말렸다.

 

  “많이 놀라서 피곤이 몰려온 게지. 좀 자게 놔두게. 이 육포나 좀 들게나.”

 

  잠든 그녀를 보며, 스승님의 말대로 신녀는 그저 어린아이였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