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결] 언덕에 부는 바람/1부

8. 마왕군과 만나다

cindy24 2019. 8. 23. 07:46

  8. 마왕군과 만나다

 

  그랜트는 떠나지 않으려는 나와 울다 실신한 신녀를 데리고 마을로 들어섰다. 그랜트는 나를 여관에 식당에 앉히고는 음식을 시켰다.

 

  “충격을 받은 건 알아. 이럴수록 더욱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해. 시켜놓은 음식들 꼭 챙겨먹어. 내가 확인할 거야. 알겠지?”

 

  그랜트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멍해진 눈으로 내 앞에 차려지는 음식을 바라보기만 했고, 그 사이 그랜트는 신녀를 침대에 뉘이고 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하지만 차마 수저를 들 수 없어서, 나는 자리를 박차고 다시금 무덤가로 향했다. 무덤가에서 칼을 휘두르며 연습을 계속했고, 그제야 머리가 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계속된 노숙에 지친 일행들은 마을에서 예정보다 좀 더 머물기를 원했다. 마을을 떠나고 싶지 않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묻힌 스승님과 차마 떨어지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원래의 예정대로라면 1박으로 끝났을 예정이 3박으로 늘어났다.

 

 

**

 

 

  매일 가벼운 식사를 마치고 나는 스승님의 무덤가에서 검술 훈련을 했다. 그렇게 검술 훈련에 집중하다보면 점점 머리가 맑아졌다. 그리고 다시금 그랜트를 위해 결의를 다졌다. 이 여정은 처음부터 그랜트를 돕기 위해 참가했음을 상기했다. 스승님이 떠난 것은 슬프지만 이렇게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이제 움직여야 했다.

  스승님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신녀는 무덤가에서 실신한 다음부터 말을 하지 못했다. 말하는 것을 잊어버린 것처럼, 그녀는 점점 감정도 잃어갔다. 그런 그녀가 걱정되어 그랜트는 신녀의 곁에 머물렀다. 마법협회 사람들은 그들만의 숙소를 마련해 출발 날짜만 알려달라며 마법협회로 가버렸다. 문제는 난봉꾼 둘이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고삐가 풀린 것이었다. 출발하기 전부터 온갖 기행을 일삼던 둘은 마을에서 날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을 말릴 수 있는 스승님 없었고, 그랜트는 신녀 곁을 떠나지 못해 뒤처리도 빨리 하지 못했다. 늦게라도 나와 그랜트가 피해자들을 찾아가 사과를 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쉽게 우리를 용서하지 못했다. 신전에서 넘겨준 지참금들도 거의 다 사용하고 있었기에 그랜트는 어렵게 이제 떠나야겠다고 말했다.

  떠나기 마지막 밤, 나는 스승님의 무덤에서 한참을 칼을 휘두르다, 스승님의 무덤에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스승님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겠습니다.”

 

  눈을 감고 짧게 묵념을 올렸다. 그때 섬뜩한 기운이 마을 근처에 가득해진 것이 느껴졌다. 나는 서둘러 마을로 향했고, 마을을 향해 수많은 마물들이 몰리고 있었다. 마물들은 두뇌가 없는 짐승들과 다름이 없었는데, 이들은 군대처럼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 모습에 칼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서둘러 성벽을 향해 소리 질렀다.

 

  “저는 용사 일행의 일원입니다. 용사 일행이 곧 도착할 테니, 그때까지 성문을 닫고 방어선을 구축해주세요!”

 

  몇몇의 마을 사내들이 지원해 나와 함께 성벽에서 몬스터들을 대비했다. 그 사이 그랜트가 신녀를 데리고 도착했지만, 다른 일행들은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근접전투를 하는 그랜트와 나는 밀집한 마물들을 향해 광역마법을 펼쳐줄 두 마법사를 기다리며 성벽만을 방어할 뿐이었다. 신녀는 말을 하지 못했어도 우리를 향해 결계를 펼쳐 우리들을 보호해주었다. 하지만 이대로 버티기만 할 수 없었다.

 

  “그랜트, 내가 스승님을 대신해 서포트가 되어 줄께! 저기 무리를 지휘하는 우두머리 몬스터를 네가 직접 상대해줘! 우두머리만 처치된다면 마물들은 무리를 이루지 못 할 거야.”

 

  나는 그랜트가 대장 몬스터와 싸울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그랜트는 신녀의 결계로 몸을 보호한 채 무리의 우두머리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계획대로 지휘하던 우두머리가 그랜트의 칼에 죽자, 무리를 이루던 마물들은 오합지졸이 되었고 쉽게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무리가 하나가 아니라는 것에 있었다.

  그 사이 다행스럽게 마법협회의 사람들과 일행들이 나타나 공격을 도왔다. 하지만 마물의 수를 보고 겁을 낸 헤머는 그 자리에서 오줌을 지리고 주저앉았다. 물론 헤머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마물들에 겁을 먹었다. 그래도 용기를 잃지 않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마물의 군대가 거의 끝을 보이고 있었다.

 

  “캬캬캬, 정말 재밌군, 재밌어.”

 

  괴상한 웃음소리와 함께 마물군대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섰다. 악마, 그는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돋아 있었고, 박쥐날개 같은 모습의 커다란 날개를 뽐내며, 붉은 눈을 형형하게 빛냈다.

 

  “개미들 주제에 반항하는 게 정말 재미있단 말이야. 캬캬캬캬.”

 

  한참을 비웃던 악마는 갑자기 정색하더니 말했다.

 

  “이게 함정인줄도 모르고 말이야.”

 

  그 말이 끝나자 우리의 뒤쪽에서 비명이 울렸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비웃던 악마와 비슷한 모습을 한 다른 악마가 자신의 날개를 펄럭이며 날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낯이 익었다. 바로 그는 난봉꾼 마법사 딜런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