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그랜트의 결의
18. 그랜트의 결의
* 그랜트 시점
그린을 따라 백작가까지 왔고, 도착해서는 그린답지 않은 소란도 피우고, 백작님에게 칼까지 들이댄 그린. 그린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많이 충동적이었다. 게다가 우리가 데려온 아이가 신녀일 줄이야. 백작님의 호의로 배를 가득 채운 우리는 소화도 안 되서 침대에 누워 뒹굴 거렸다. 그러다 우리는 눈이 마주쳤고, 서로 빵빵해진 얼굴을 보고 웃음이 터졌다. 이렇게 함께 웃는 게, 비밀장소가 아닌 장소에서 이렇게 함께 있는 게, 평생 못 먹어 볼 음식으로 배를 가득 채워 보는 게, 모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너와 함께 마을을 떠난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내 말에 그린은 표정이 굳었다. 뭔가 깊게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갑자기 내 손을 붙들고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거짓말 같을 건 알아, 하지만 끝까지 들어줘.”
그렇게 시작한 그린의 말은 놀라웠다. 아까 함께 있던 신녀의 계시로 나는 용사가 되었고, 우리는 용사일행을 모아 마왕을 처치하기 위해 떠났다고 한다. 그 일행에는 아까부터 그린이 그렇게 찾았던 휘슬이라는 사람도 함께였고, 지원자들과 마법협회의 파견마법사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지원자중에 배신자가 있었고 모두 살해당했다고 한다.
이야기는 너무 현실성이 없어서 마치 동화책의 한 장면들 같았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점이 떠올랐다. 휘슬, 이 사람은 내가 다섯 살 때 우리 집을 찾아왔다. 그리고 나를 꽤 탐탁지 않아 했는데, 그린의 말대로라면 나는 휘슬이라는 사람의 제자였고, 용사로서 커왔다고 했다. 이미 다섯 살 때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사람이 겨우 몇년 만에 마음을 바꿔서 나를 제자로 들였다? 어떤 중요한 일이 있었다고는 해도 몇년 만에 사람의 마음이 쉽게 바뀔까?
그린은 나를 용사로 칭하며 설득시키려고 했지만, 여러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왜 배신자라는 존재는 그린을 가장 마지막에 죽였을까? 여신은 왜 그린의 영혼을 데려갔을까? 내가 용사일리는 없고, 혹시 그린이 용사라면? 그럼 모든 이야기가 맞아 떨어진다. 휘슬씨는 그린을 마음에 들어 할 것이고, 그린은 휘슬씨의 제자가 되겠지. 그리고 여신은 자신의 가호가 담긴 사람에게는 힘을 행사할 수 있다.
그린은 안절부절하며 어떻게든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럴수록 내가 용사가 아니라는 사실만 더욱 또렷해졌다. 당황하면서 몇 가지 이야기가 바뀌고 그런 이야기는 내가 용사라는 사실을 말할 때마다 과정이 조금씩 달라졌다. 당황한 나머지 디테일까지 신경 쓰지 못 하는 게 분명했다. 좋은 친구. 내가 실망할까봐 나를 신경 써주는 게 분명했다.
그린은 나의 평생의 친구다. 나는 그가 원하는 대로, 그가 하고 싶은 대로, 그를 위해 끝까지 함께 할 것이다. 그린이 내게 진실을 이야기 해줄 때까지 내가 용사님으로서 얼마든지 연기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