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 Sleeping Beauty
[스릴러] Sleeping Beauty
1. 슬리핑 뷰티
반년전부터 한국에는 연쇄 폭파범에 관한 뉴스로 연일 화제이다. 사람들은 이 폭파범에 대해 범죄자라는 사람들과 의인이라는 사람으로 나뉘고 있다. 이유는 폭발의 대상이 크고 작은 범죄자들을 향한다는 것이며, 폭발은 단순히 소리만 크고 내용물에 수면가스를 담아 폭발한 주위의 사람들은 잠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폭발은 폭발이다 보니 사상자가 없지는 않았다. 큰 폭발음에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람이 다섯, 고막을 다치거나 수면가스에 이상을 보여 호흡정지로 사망하는 사례 또한 발생했다. 폭발을 겪은 일부 사람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 연쇄 폭발범을 ‘Sleeping Beauty(잠자는 숲속의 공주)’라고 부르고 시작했다. 슬리핑 뷰티를 의인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은 숨은 범죄자들에게 폭발물을 보내 숨겨진 범죄 사실들이 세간에 드러났으며, 덕분에 범죄의 수가 급감한 것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엄연한 범죄자라고 평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비록 사상자를 내지 않으려고 했다지만 심장마비며 호흡곤란으로 죽은 사람이 일곱은 되며, 폭발에 다친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사람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지만, 확실한 것은 있었다. 슬리핑 뷰티의 활동으로 인해서 범죄자들의 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는 사실. 그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2. 남매
나는 나이차이가 10살이나 되는 누나와 함께 살고 있다. 내가 10살 때, 집에 큰 화재로 인해 부모님을 모두 여의고 말았다. 당시 누나의 나이는 20살, 당시 재수를 준비하던 누나는 나를 돌보기 위해 대학을 포기하고 생업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나는 누나의 밑에서 10년을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왔다. 이제 스물이 된 내가 직접 생업에 뛰어들어 집안에는 여유가 좀 생겼다. 제작년부터 누나는 개인 꽃가게를 열어 운영하고 있고, 나는 누나의 꽃집일을 도우면서 각종 알바를 뛰고 있다. 바쁘지만, 나를 위해 20대를 포기했던 누나를 위해서는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고, 누나는 내게 누나면서도 엄마이기도, 아빠이기도 했다.
누나에게는 등에 큰 화상자국이 있다. 집에 큰 화재가 났을 때, 누나는 나를 구하려다가 등이며 온몸에 크고 작은 화상을 입었고, 10년간 치료를 병행한 덕분에 작은 화상들은 거의 아물었지만, 등에 남은 커다란 화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화재, 그것이 우리 가족을 박살냈으며, 누나의 20대를 빼앗아 갔다. 그리고 그 화재의 원인은 나였다. 어렸기 때문에 잘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내가 실수했기 때문에 사고가 났다.’라는 걸 얼핏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누나에게 직접 물어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찬아, 밥 먹어야지.”
일요일, 꽃가게도 쉬는 날인데도 누나는 나를 위해 아침을 준비했다.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식탁으로 갔다.
“아라 누나, 모처럼 쉬는 날인데, 더 쉬지 않고. 나는 라면 끓여 먹어도 되는데.”
“찬아, 밥은 잘 챙겨먹어야 해.”
누나는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결국 자리에 앉아 밥에 물을 말아 식사를 시작했다. 누나는 입맛이 없는지 조용히 식탁에 앉아서 내가 먹는걸 지켜보다가 TV를 켰다.
[일주일 전, 산양읍에 있던 하우스 폭파 사건에 대한 뉴스입니다.]
슬리핑 뷰티, 반년 전부터 시작된 폭발사건은 세간을 들썩이게 했다. 일주일전 폭발까지 여섯 차례, 한 달의 한번 꼴로 발생하는 폭발은, 그 대상이 범죄자들을 향한다고는 하지만 나는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투덜대며 말했다.
“폭발이 비록 범죄자들을 향한다고는 해도, 범죄는 범죄잖아.”
누나는 조용히 TV를 끄고, 다시 식탁에 앉아 내가 투덜대는 걸 들어주며 온화하게 웃었다. 나는 TV내용에 대해 한참 투덜대다가, 이내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누나는 그저 온화하게 웃으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이 시간이 참 좋다.’라고 생각했다.
3. 폭발이 계속 되다
벌써 여덟 차례의 폭발, 사람들은 대부분 슬리핑 뷰티를 응원하는 분위기였다. 범죄양이 급격하게 줄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대부분 슬리핑 뷰티의 대상이 숨은 범죄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숨어있던 많은 피해자들이 나타났고, 사람들은 슬리핑 뷰티를 의인이라고 불렀다.
최근 극성의인파 중에 한 사람이 직접 슬리핑 뷰티를 만난 일로 연일 화제였다. 티비에서 인터뷰까지 하는 여인은, 마치 종교단체에 심취한 사람처럼 황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온화하고 아름다운 여성이었고, 그녀가 원하는 바, 그 생각이 정말 의인 그 자체였어요!”
나는 늦은 시간 TV에서 나오는 여자의 모습이 영 꺼림직해서 TV를 꺼버렸다. 세상이 점점 미쳐가는 것 같다. 신문에서도 TV에서도 인터넷에서도, 슬리핑 뷰티를 의인이라며 칭송했다. 그들이 미친걸까? 아니면 그들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내가 미친걸까? 점점 뭐가 옳은지 알 수 없게 되었다.
4. 정체가 밝혀지다
[김아라씨, 경찰입니다!]
“누나? 무슨 일이야?”
누나는 내 물음에 별다른 대답없이 조용히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수많은 기자들과 경찰들로 가득했고, 누나는 조용히 두팔을 들어 항복의 의사를 표현했다. 경찰은 미란다 원칙을 외며 누나를 잡아 들였고, 나 또한 참고인이라며 함께 동행하자고 했다.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음에도 누나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누나와 다른 경찰차로 이송되던 나. 수많은 기자들이 나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물었다.
“누나가 슬리핑 뷰티라는 걸 알고 계셨나요?”
나는 충격에 빠져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저 경찰들이 이끄는 대로 경찰차에 올라탔을 뿐이었다.
**
[여덟 번째 폭발 이후, 슬리핑 뷰티와 만남을 가졌던 윤씨, 그녀의 동선을 따라 움직인 경찰이 범인인 김씨를 채포했습니다.]
화면은 윤씨가 TV에 나와 슬리핑 뷰티를 찬양하는 화면으로 바뀌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안 경찰은 날 쉽게 풀어주었고, 지금 현장조사가 한창이라 집 대신 모텔에라도 묵으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경찰의 말을 외면하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 아직 남아 있던 수많은 기자들의 카메라가 나를 향했고, 경찰들이 친 바리케이트로 나는 집으로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결국 집근처 작은 모텔에 숙박하게 되었다.
그가 들른 것은 새벽 4시 무렵이었다.
[김찬씨. 김아라씨의 변호사입니다.]
자신을 변호사라고 밝힌 남자는 국선변호사 한씨였다. 그는 누나를 위해 노력하고는 있지만 폭발에 관한 범죄는 워낙 무거운 범죄라 무기징역을 면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나는 무거운 입을 열어 겨우 물었다.
“왜 그랬다고 하던가요?”
“김아라씨는 모든 사건을 시인했지만, 그 외의 것에는 모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결국 자신도 모른다는 말을 어렵게 하고 있었다. 누나는 어째서 폭파를 시작한 것일까?
**
극성 의인파의 사람들이 누나를 옹호하며 가벼운 처벌을 요구했지만 폭발물 제조 및 살인으로 인해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재판장에서 때때로 나와 눈을 마주친 누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마지막 선고까지도 누나는 다르지 않았다. 가끔 변호사를 통해 내 안부를 묻기만 할뿐 누나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몰랐다. 누나가 자살을 할 거라는 걸. 무기징역이 선고되고 며칠 뒤 누나는 감옥에서 자살했다. 장례식을 치를 때도 기자들이며 수많은 사람들은 누나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나는 장례식에서조차 득달같이 달려드는 사람들이 싫었다. 화장한 누나는 한 납골당에 모셨다.
소란은 시간이 지나면서 잦아들었다. 나도 결국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했고, 누나의 자살로 끝나버린 사건은 집도 내게 돌려주었다. 비록 수사라는 명목으로 엉망진창으로 뒤집어진 곳이었지만.
나는 집안을 정리했다. 첫 만남과 같이 그 남자는 뜬금없이 나를 찾아왔다. 국선 변호사 한씨.
“김아라씨가 남긴 편지입니다.”
자신이 죽으면 내게 넘겨주라고 했다는 편지, 국선변호사는 편지를 전해주고는 또 황급히 사라졌다. 나는 그 편지에,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어째서야, 누나, 왜야, 그 많은 물음을 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원망하기도 했다. 어째선대? 누난 왜 그래야 했어? 하지만 이내 전과 다름없는 누나에, 누나를 이해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시기 그렇게 누나가 떠나갔다.
5. 편지
* 누나의 시점
찬이에게는 꼭 당부한 일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이 와도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나는 당시 사채를 썼던 부모님이 실종당해 그들을 찾으러 백방으로 알아보던 중이었다. 옆집 아주머니께 찬이를 돌봐달라고는 했지만, 아주머니는 때를 맞춰 식사만 전해줬을 뿐, 찬이를 잘 돌봐주시지는 않았다. 그래도 찬이가 굶지 않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때의 나는 부모님의 행방을 찾는데 급급했기 때문에.
오늘도 한껏 허탕을 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집에 아무도 없어서 크게 놀랐다. 찬이가 없었다. 식탁에는 시간과 주소가 적힌 쪽지, 그리고 OO금융이라는 명함이 하나 놓여 있을 뿐이었다. 나는 서둘러 쪽지에 적힌 장소로 향했다. 그곳에는 부모님과 찬이가 함께 있었다.
“김아라양, 자네 부모님이 진 빛이 무려 2억이야. 알아? 게다가 자네랑 동생을 버리고 둘만 배타고 도망치려고 했다니까? 우리는 아라씨와 찬군을 위해 가족들을 만나게 해준 것뿐이야. 찬군은 참 착하더라고. 부모님 만나게 해준다니까 순순히 잘 따라오던데?”
부모님은 내 눈을 피했다. 울고 있는 찬이도 외면하며 부모님은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내가 당신들을 얼마나 찾아 헤맸는데. 어떻게 우리한테 그럴 수 있어? 나는 성인이라 괜찮아. 근데 찬이는? 이제 갓 초등학교 입학한 아들을 어떻게 버려? 나는 분노로 화가 가득했다.
“2억이라는 돈, 아라양이 갚아줘야겠어.”
사장이라는 사람의 말에 나는 얼척이 없었다. 결국 날 여기 부른 것은 나를 이용해 돈을 벌기 위함이었다. 성인비디오며 성매매를 통해 돈을 만드려고. 사장이라는 사람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찬이를 위해 참아야만 했다.
“여기서 일부 갚아도 되는데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몇몇의 남자가 느물거리는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나는 두려움에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 두통의 가스통을 건드렸고, 그 과정에서 가스통이 폭발했다. 버려진 공사장처럼 보였던 공간은 열심히 타올랐다. 나는 모든걸 재끼고 오로지 찬이를 살리기 위해 달려들었다. 화마는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고 있었다. 나쁜 사람들도 부모님도 모두 태우고 있었다. 나는 불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보며 눈앞이 아득해졌다.
정신을 차리자, 나와 찬이만 겨우 살아남아 병원에 있었다. 화마, 그것은 나쁜 사람들에게 동등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와 찬이같은 사람들이 비단 우리뿐이 아닐거라고. 이건 나쁜 사람들에게 단죄를 가할 좋은 수단이라고.
하지만 찬이와 둘이 살면서 고된 일을 많이 하다보니 다 잊고 살았다. 시간이 그렇듯, 모든걸 용서하게 만들고 있었다. 다만, 그날이 되기 전까지는.
함께 알바를 하던 한 친구가 죽었다. 대출에 손을 댄 그녀는 성상납을 강요받았고, 그걸 거부하다 목숨을 잃었다. 연예인이 될거라고 웃던 그녀는 그렇게 스물다섯이라는 짧은 생을 마치고 말았다. 그래서 기억했다. 과거의 분노를. 그날부터 나는 계속 준비했다. 인터넷으로 폭발물을 제조하는 방법, 그들을 화마로 한 번에 용서할 수 없었다. 범죄 사실을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단죄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 시작했다. 수면가스를 넣은 폭발을. 그리고 그 첫 폭발은 그녀의 목숨을 앗아간 대출업체였다.
친구처럼 성상납을 강요받았다던 윤씨. 그녀는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그래서 경찰에게 꼬리가 잡힐 걸 알면서도 그녀와 교류했다. 그녀가 죽은 내 친구처럼 보여서. 이 편지는 내가 경찰에 잡힐 걸 알기 때문에 준비한 편지다. 찬이에게 닿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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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는 누나의 회고록처럼 보였다. 화재, 그 시작은 역시 나였다. 내가 사장이라는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었기 때문’에. 결국 누나가 한 모든 폭발도 내 탓이었다. 누나의 10년도 빼앗은 주제에, 누나의 목숨조차 앗아갔다. 누나의 분노가 담긴 편지.
나는 누나의 의지를 따르기로 했다. 세상의 나쁜 짓을 한 사람들에게 폭발로 단죄를 알리겠다고. 이것은 누나의 업보를 잇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세상에 대한 복수일 뿐일까? 이젠 모르겠다. 그저, 폭발만이 목적이 되버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