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dy24 2019. 9. 21. 11:17

[판타지] 보이지 않기에 볼 수 있는 것

 

  3. 그 날

 

  언니들을 보내고 하루가 지났다. 드디어 내가 첫 손님을 맞는 그 날이 되었다. 도련님에게 메어 있었던 언니들은 모두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사라졌다. 나도 언젠가 그들처럼 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언니들의 마지막이 아름다웠기에 만족스러웠다. 첫 손님을 위해 창부언니들이 바빠졌다. 나를 씻기고 입히고 언니들은 기뻐했다. 그런 언니들의 마음이 고마워서 나는 죽은 언니들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저 언니들의 시중을 받았을 뿐이었다.

  포근한 이불, 평소에 덮고 잠에 들던 이불과는 다르게 손으로 느껴지는 비단은 보드랍고 매끈했다. 그 미끄러운 이불이 생소하고 이상해 괜스레 피식하고 실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은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귀로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삐걱거리는 소리에 귀가 예민해졌다.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내게 가까워질수록 온몸의 솜털이 삐죽 섰다. 이내 방에 가까워진 발걸음 소리, 방 앞에서 사람들은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긴장한 탓인지 그들의 말소리조차 귀에 담기지 않았고, 머릿속이 점점 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다.

  순간 문이 열리며 주변에 짙은 매화향이 가득 찼다. 익숙한 향에 고개를 들자, 열린 문 앞에는 하얀 머리칼을 한 사내와 검은 머리칼을 질끈 묶은 사내가 서있었다. 둘 다 사람이 아니구나. 하얀 머리칼을 한 사내가 나와 눈을 마주하고는 말했다.

 

  [역시 내가 보이는 구나.]

 

  하얀 사내는 내 곁으로 와, 내 눈 위에 손을 얹고 말했다.

 

  [귀한 능력이로고, 선대인가? 너는 선조회귀구나. 그것도 나와 비슷한 존재의 혼혈이야. 귀해, 정말 귀해, 흑아야, 어서 이 아이를 데려가자. 귀한 아이야!]

 

  흑아, 머리를 질끈 묶은 사내의 이름이었나보다. 하얀 사내는 내 곁에서 이름이 무엇이냐, 너는 무얼 좋아하지?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아무런 대답도 못한 상태로 멍하니 있었다. 그 사이 흑아라고 불린 사내는 주인 언니와 한참을 대화를 나눴다. 주인언니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화가 난 듯했지만, 이내 짤랑이는 소리와 함께 주인언니의 목소리가 조용해졌다. 잠시후,

 

  “좋습니다. 이제 홍화는 자유입니다. 데려가시지요. 홍화야 이제 네 주인은 이분이시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구나.”

 

  그 말을 끝으로 주인언니의 소리는 멀어졌다. 하얀 존재는 내게 말했다. 우리가 너를 자유롭게 해주겠다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며. 그것이 나를 큰 돈에 사들이겠다는 이야기인줄을 몰랐기에 당황스러워했다.

 

  “이만 가지.”

 

  흑아라는 사내는 내 손을 꼭 부여잡고 창부를 나섰고, 그의 손에 붙들려 나가며 나는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사실 두려웠다. 다른 언니들처럼 창부에 머물며 살아가는 인생은 무서웠고, 유령이 되었던 세 언니들처럼 될까 두려웠다. 그런 나를 구해준 이 둘에게, 내가 평생을 값을 수 없는 큰 은혜를 받았다.

 

 

**

 

 

  하얀 존재는 기린이라고 불리는 신수였다. 평범한 유령이나 요괴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신수인 기린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의외로 친절하고 다정다감한 존재였다. 그리고 계속 날 따라다녔던 매화향은 기린님에게서 나오는 것이었다. 포근한 향기. 나는 기린님의 곁에 머무는 것이 너무도 좋았다.

  흑아라고 불리는 사내는 기린님과는 다르게 말이 거의 없었다. 필요한 것이 아니면 굳이 입을 열지 않았고, 흑아라는 사내에 대해 이야기 해준 것은 기린님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세 살 위고, 놀랍게도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사람의 흉내를 낼 수 있는 요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기린님의 이야기를 들어 판단 하건데, 반대로 흑아라는 사내는 요괴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내 눈에 비치는 것이겠지.

  내가 머물게 된 곳은 골동품점 이었다. 오래된 물건이 가득한 이곳을 흑아씨 홀로 관리하고 있었으며, 물건을 사고파는 데에는 기린님의 지식이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골동품 점은 겉으로 보여 지는 일에 불과했고, 주로 하는 일은 ‘그들’에 관련된 일이었다. 유령이나 요괴들에게 고통 받는 사람들이나, 반대로 유령과 요괴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오늘도 객이 많으니 노래를 불러 보거라.]

 

  기린님은 내가 부르는 노래를 좋아하셨고, 그때만큼은 많은 유령들과 요괴들, 게다가 흑아씨까지 귀를 기울여주었다. 나를 위해 골동품으로 있던 가야금을 선물해 주었고, 그것은 내 소중한 보물이었다. 내 노래에 만족한 몇몇의 존재는 만족한 듯 사라졌고, 기린님과 흑아씨는 내 노래를 안주삼아 술을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