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언덕에 부는 바람

 

1부) 용사 그랜트과 그 일행에 대하여

 

  1. 용사 그랜트

 

  내 이름은 그린이다. 성이 없는 평범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났고 나도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지으며 아내를 맞아 아이들과 함께 사는 평범한 미래를 살겠지. 그런 인생은 조금 따분하기는 해도,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에 싫지는 않았다.

옆집 퇴직기사의 아들인 그랜트와는 어릴 적부터 함께 어울리던 소꿉친구였다.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로 인해 억지로 검을 배웠지만, 사실 그랜트는 아버지와 다르게 검술에는 별로 실력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유명한 기사였다는 그의 아버지는 뼈도 제대로 여물지 않은 아들에게 억지로 무리한 검을 가르쳤고, 그랜트는 늘 아프고 힘겨워했지만 그 누구도 돕지 못했다. 그런 그의 유일한 친구가 나였다.

  나는 집에서 그렇게 멀지않은 장소에 비밀장소를 만들었고, 그랜트는 아버지의 무서운 훈련이 끝나면 늘 비밀장소에 놀러와 나와 함께 어울렸다. 그랜트는 고압적인 아버지 탓에 조금 소심했지만, 마을의 그 누구보다 순수한 아이였다. 언젠가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모험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던 그랜트는 늘 동경하던 영웅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행복하게 웃었다. 나는 그 순수한 웃음이 참 값지다고 생각했다. 농사일이라는 것도 단순하기는 해도 고된 노동이었다. 나도 어릴때부터 농사꾼으로서 살 마음을 먹고 아버지에게 여러 기술을 배우고 있었기에, 그랜트와 나는 다른 분야라고는 해도 서로 고생이 많다며 실없이 웃곤 했다.

  그렇게 어린시절을 보내고 청년이 된 우리가 조금씩 다른 길을 가게 된 계기는 한 신탁에 의한 것이었다. 우리 마을의 종교인 여신 엘린님이 내린 신탁에서 그랜트가 앞으로 있을 마왕의 위험에 대비할 용사님으로 뽑힌 것이다. 그 소식에 그랜트의 아버지는 한없이 기뻐했지만, 모험가를 꿈꾸던 그에게 있어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게다가 아직 시작도 안한 마왕의 침략을 마냥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나는 용사가 되고 싶은 적이 없었어.”

 

  기운 없는 그랜트에게 나는 말없이 술을 건넸다. 한껏 술에 취한 그는 언제 꿈을 이룰 수 있게 될는지 모르겠다며, 더욱 강압적이게 변한 아버지의 훈련이 더 이상 싫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탁으로 정해진 운명이라는 것이 결국 그랜트를 사지를 내몰게 되었다.

  엘린님의 신탁대로 마왕의 부하들이 하나둘 세상에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그랜트의 아버지는 용사의 아버지라는 이유로 마물들의 목표가 되었고, 퇴직기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명예롭게 마물과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 그랜트에게 있어서 비록 좋은 기억이 없는 가족이었지만, 아버지는 아버지. 그랜트는 복수를 다짐하며 함께 마왕을 저지할 일행을 모으기 시작했고, 많은 지원자가 신전으로 모였다.

  그 시기, 나는 옆 마을의 처녀와 맞선을 보았다. 옆 마을에서 부모님과 함께 농사일을 하는 그녀에게는 언니가 둘 있었고, 다른 곳에 시집간 언니들처럼 나에게 시집오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녀도 나도 혼기가 꽉 찬 나이였기 때문에 서로 약혼은 생략하고 결혼을 서둘고 있던 시기였다. 나와 그녀의 결혼은 차근차근 진행되어 갔다. 그녀가 싫은 건 아니었지만, 그랜트의 상황을 지켜보자, 정해진 운명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그랜트는 그동안 용사 일행을 모으며 바쁜 시간을 보냈기에, 우리가 비밀장소에 모인 것은 꽤 오랜만의 일이었다.

 

  “이제 출발할 일만 남은 것 같아.”

 

  모인 사람은 총 다섯, 검으로 직접적인 공격을 하는 그를 서포트하는 보조형 검사, 후방에서 그를 지원하는 공격계 마법사 둘, 일행들에게 보조마법과 회복마법을 주로 하는 회복 마법사 하나, 그리고 그랜트와 함께 직접적인 공격을 하는 둔기계열의 공격자. 그들을 고른 건 신전이었다.

  서포트를 담당하는 사람은 많은 전투경험을 가진 사람이었으나, 이번 전투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결심한 노장이었다. 이름은 휘슬 와이엇, 그랜트는 전투 경험이 많은 휘슬씨에게 많이 의지한다고 말했다. 그가 해주는 소소한 조언이며,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면모까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공격계열 마법사 중 하나는 마법협회의 사람으로 이름은 휘트니 메테오라고 했다. 마법협회에서 파견한 사람이니 실력은 확실하지만, 며칠 전 마법협회를 직접 찾아가 그녀를 만났던 그랜트는 어쩐지 그녀가 사람 같지 않고 마치 인형 같아서 불편하다 했다. 친해지기 힘들 것 같다고 웃는 그의 웃음에서 왠지 모를 피곤함이 느껴졌다.

  다른 공격계열 마법사는 지원자 중에서 뽑힌 실력자로, 모험가로서는 이름을 꽤 알린 남자 마법사였다. 쥴리안 딜런, 이 자의 이름은 전투에 관해서는 문외한인 나조차도 알만큼 유명했다. 그가 유명한 마법사였기 때문이 아니라, 사생활이 너무도 문란했기 때문이었다. 나이를 가리지 않고 마음에 드는 여자라면 강제로 취하려고 드는 난봉꾼으로, 한간에서는 실력만 믿고 까부는 놈이라고 평할 정도였고, 진짜 실력이 없었으면 그 누구도 상대하고 싶지 않아하는 그런 쓰레기였다.

  그랜트와 함께 직접적인 공격을 하는 둔기 공격자는 이제 갓 모험가가 된 젊은 남자로, 이름은 메이슨 헤머다. 그는 딜런에게서 어떤 동경할만한 면모를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늘 딜런을 따라, 딜런처럼 행동하려고 드는 어리석은 자였다. 하지만 딜런과는 다르게 아직 애송이에 불과했던 그는 딱히 특출 나지 않은 전사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실제로 이 파티에는 불필요한 존재였지만 굳이 이 사람을 데려가야겠다고 우긴 마법사 딜런 탓에 일행에 합류한 사람이었다.

  가장 중요한 회복마법사는 신전의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는 신녀, 글로리아 브라이트였다. 태어났을 때부터 여신의 가호를 받아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그녀는, 어린 나이 때부터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신전의 보호를 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이제 갓 15살을 넘었다는 그 어린 소녀는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신전에 갇혀 살았기 때문에, 사실상 세상물정 모르는 아가씨 그 자체였다.

  신전에서 모았다는 사람들의 합이 그렇게 좋지 못하다는 건, 전투에 관해 알지 못하는 내가 봐도 알 것 같았다. 실력만큼은 출중하다고는 하나, 그들이 과연 한 팀이 되어 전투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노장인 휘슬씨를 제외하고는 오합지졸이 따로 없는 파티. 그들의 설명을 들은 나는 혀를 내둘렀다. 그런 나를 보며 어쩔 수 없다며 웃는 그랜트가 안쓰러워보였다. 그래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나도 그 파티에서 일을 돕겠노라고 말했다. 힘이 쎄니 짐꾼이라도 하나 있으면 되지 않겠냐는 말을 덧붙여서. 그랜트는 거절했지만 지금껏 친구로 지내온 그가 안쓰러워 그냥 보낼 수 없었다. 그랜트는 그런 나를 꼭 안고서 눈물을 흘렸다. 고맙다고, 지금까지 준비하면서 너무 힘들었다고 한탄하는 그를 보며, 나는 내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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