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처음 만난 죽음
마법협회는 전투 이후, 싸움에서 도망친 신전 사람들과 다르게 전투에 임했다는 이유로 의기양양해졌다. 그러다보니 용사인 그랜트의 말도 무시하며 독단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일행의 걸음은 더욱 느려졌다. 신녀의 마차는 완전히 망가져서 스승님이 신녀를 태우고 말로 이동했고, 그 모습을 보며 마법협회 사람들과 난봉꾼들은 한껏 비웃으며 자신들의 위엄을 내세우기에 바빴다.
그 사이 난봉꾼 중 마법사는 같은 마법사들이라 대화가 잘 통했는지 마법협회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특히 마법협회의 파견 마법사 메테오와 함께 다니는 일이 많았고,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헤머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헤머는 마법협회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기 때문인지, 그의 관심의 대상을 신녀로 삼았다. 마을에서 온갖 나쁜 짓을 했던 습관대로 아직 15살밖에 되지 않은 신녀에게 손을 대려고 했다. 미연에 방지한 스승님 덕에 미수로 그쳤지만, 그 일로 헤머는 스승님을 적대하고 있었다. “늙은이 주제에!”라며 시비를 거는 헤머를 스승님은 무시하며, 오로지 신녀에게 손을 뻗지 않도록 신경 쓸 뿐이었다.
우리 일행의 노숙은 계속 되었고, 겨우 첫마을이 가까워질 때 즈음 일이 터졌다. 출발하려던 스승님이 갑자기 말에서 떨어졌고, 함께 말을 타고 있던 신녀를 보호하느라 스승님은 머리부터 떨어져 큰 부상을 입게 되었다. 놀란 나는 서둘러 스승님에게 갔고, 그사이 신녀는 스승님을 신성마법으로 치료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헤머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늙은이, 빨리 뒈져버려.”
나는 그를 노려봤지만, 그는 더 큰소리로 비웃기만 했다. 내가 주먹을 쥐고 달려들려고 하자, 내 팔을 스승님이 움켜쥐며 말렸다. 결국 출발하려던 우리는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되었고, 마법협회 사람들도 스승님을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더했다.
신녀는 울먹이며 스승님이 낫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녀를 스승님이 다정하게 위로하며 말했다.
“다 내가 늙어서 그런 게지. 말에서 떨어져서 놀랐겠구나. 꼬마 아가씨는 괜찮고?”
도리어 신녀를 위로하는 스승님에 나도 그랜트도 엄숙해졌다. 스승님은 치료하던 신녀를 그랜트에게 넘기고 대신 말에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그랜트에게 귓속말로 헤머가 신녀를 욕심내고 있는 듯 보이니 조심해달라고 하며, 신녀가 걱정되던 스승님은 몇 번이고 신녀를 잘 돌봐달라고 그랜트에게 당부했다. 이내 그랜트에게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은 스승님은 진지한 표정을 풀고 신녀를 그랜트에게 넘겼다. 그리고 신녀를 넘긴 스승님은 내게 귓속말을 했다.
“아무래도 독에 당한 것 같네. 신전의 꼬마 아가씨는 해독 마법을 못하는 모양이야. 어떤 독에 당한건지 몰라서 함부로 해독제를 쓰지도 못하네.”
나는 스승님의 말에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스승님은 괜한 불안감을 조성해서는 안된다며 도리어 나를 진정시켰고, 그랜트에게 말했다.
“나는 그린과 잠시 쉬어가겠네. 마을이 거의 다 왔으니, 먼저 이동하도록 해. 나 때문에 더 늦어지면 안 되지 않나.”
그랜트는 우리를 두고 가는 게 내키지 않았지만 재촉하는 마법협회의 사람들을 이기지 못했다. 일행이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던 스승님은 그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 참았던 피를 쏟았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의 피가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받치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 하혈을 하던 스승님은 조금 진정 되었는지 숨을 골랐다.
“자네와 조금 더 빨리 만났으면 좋았을 것을. 내가 가장 아쉬운 것은 그것 하나뿐이네. 자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싶었는데 아쉽게 되었어.”
스승님은 독이 눈까지 왔는지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며 내게 손을 잡아달라고 말했다. 나는 흘러넘치는 눈물을 멈추지 못한 채 스승님의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렸다. 스승님은 손을 툭툭 쳐주며 도리어 나를 위로해주었다. 톡톡 내게 닿는 손길이 점점 잦아들다가 결국 움직임이 멈췄고, 나는 스승님 앞에 무릎 꿇고 오열했다. 스승님을 그대로 둘 수 없어서, 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나는 멍하니 앉아있기만 했다.
“그린!”
그런 나에게 달려온 그랜트는 스승님과 나를 보고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움직이며 말했다.
“스승님이 독에 당했어. 어떤 독인지 몰라 치료도 할 수 없었어.”
그랜트에게도 스승님의 죽음은 충격적이었는지 스승님 앞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나는 이 여행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회의적으로 변했다. 스승님은 이렇게 돌아가실 분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할 분이 아니었는데, 휘슬 와이엇, 그 당당하고 용감했던 용병이 죽음을 맞이했다.
그랜트와 나는 스승님을 위한 무덤을 준비했다. 그리고 무덤에 스승님의 칼을 꽂아 그의 넋을 위로했다. 제대로 된 장례식조차 하지 못하는 제자여서 죄송스러울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그새 밤이 되었다.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나와 그랜트는 무덤에서 가만히 서있었다.
“저기, 아저씨는요?”
무덤 앞에서 멀뚱히 서있던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 것은 신녀였다. 한껏 떨리는 목소리에 무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도 아는 듯 했다.
“아니죠? 아니잖아요. 그죠? 아니라고 해주세요!”
신녀는 울먹이며 우리에게 소리 질렀다. 하지만 우리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했고, 신녀는 무덤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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