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엠버
백작가에서 떠나는 일행의 여행길은 시작부터 과거와 많이 달랐다. 모두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다들 자기단련을 신경 썼고, 클로이가 가진 능력은 과거보다 강해져 모두에게 각자 보호마법을 걸어줄 정도였다. 과거와 달라진 점 중에 가장 큰 것은, 엠버2호의 정보력과 백작님의 서포트가 더해져 우리 일행의 진행이 상당히 빠르다는 점이었다. 비록 지름길로 가다보니 계속된 노숙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시간은 어느덧 저녁이 되었고, 다들 노숙을 위한 준비에 한창이었다. 루시는 보호마법도 가능해서 클로이와 함께 우리 일행들의 보호마법을 한층 강화시켜 주었고, 몬스터의 방해를 받을 일이 없기에 모두 경계를 설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엠버1호라고 불리 우는 새가 대신 경계마법을 펼치고 있어서 2중으로 대비도 가능했다.
백작님이 준비해준 식사 담당이 맛있는 음식까지 준비해 다들 화기애애한 식사를 나누고 있었다. 다만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그랜트가 분위기를 타고 자신도 모르게 과실주를 들이켰기 때문이었다. 술을 마신 것 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랜트가 술기운을 빌어 꺼낸 말이 문제였다.
“그런데, 그 새, 엠버1호? 그 새는 뭐야?”
다들 엠버1호가 호문클루스인건 알고 있었지만, 그랜트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은연적으로 알 수 있었다. 왜 호문클루스의 첫 생물이 엠버라고 불리는 그 새인 것인가라는 것. 다들 궁금해 하면서도 개인사라고 생각해서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 것이었다.
갑자기 조용해진 분위기에, 술에 취했던 그랜트도 번뜩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이미 조용해진 분위기를 수습하기는 늦은 상황이었다. 다들 조용히 눈치만 보고 있던 와중에, 엠버1호, 정확히는 엠버1호의 입을 빌은 루크가 말했다.
“그게 왜 알고 싶은데?”
루크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게 낮게 깔려 있었다. 당장이라도 루크의 명령에 따라 공격을 할 것 같은 엠버1호에 모두 경계를 놓을 수 없었다.
“됐어, 오빠. 다들 내 친구야. 오빠의 친구고. 알건 알아야지.”
“내가 말할까?”
“아니, 내가 직접 할게. 걱정 말아 오빠.”
루시는 그렇게 말하고 엠버를 하늘에 날리듯 손짓했다. 그에 따라 엠버는 평범한 새처럼 날개를 펴고 주변을 경계하듯 날아 다녔다. 루시는 손에 든 과실쥬스를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
**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마력이 매우 강했어. 부모님이 모두 뛰어난 마법사였기에 당연한 일일수도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조금 달랐어. 나는 쌍둥이로 태어난 오빠가 가졌을 마력도 내가 다 흡수해버린 걸 거야. 그러니 오빠는 마력이 없지. 늘 오빠에게 미안했지만, 오빠는 그런 날 미워한 적이 없었어. 오히려 날 사랑스러운 동생이라며 늘 예뻐 해줬지.
어린나이이기 때문에 더 나는 내 마력을 제어하지 못했어. 그래서 내가 마력에 폭주하지 않도록 부모님은 늘 내 곁에 머물러주셨어. 오빠는 그런데도 날 미워하지 않았어.
“오빠는 내가 밉지 않아?”
“우리 루시만큼 예쁜 아이가 어디 있다고! 내가 어떻게 우리 루시를 미워하겠어?”
오빠는 늘 우리 루시, 우리 루시 라며 날 이뻐해줬지만, 난 늘 미안했어. 부모님은 늘 내 곁에 있어야 했으니, 오빠는 외톨이였거든. 오빠는 늘 열심히 공부했어.
“오빠는 어떤 공부를 하는 거야?”
“우리 예쁜 루시의 곁에 머물기 위한 공부지.”
내가 10살이 되던 해, 마법협회에서 내가 강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날 데리러 왔어. 부모님도 오빠도 반대했지만, 마법협회에서는 날 강제로 끌고 갔지. 마법협회 내에서도 꽤 이례적인 일이었는지, 내가 마법협회에 도착했을 땐, 날 미워하는 사람들이 많았어. 하지만 내가 마력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그들은 날 비웃기 바빴지.
“아무리 뛰어난 마력이 있으면 뭐해. 제어도 못하면서.”
마법협회에서는 폭주하는 날 막아주는 사람도 없었어. 마력폭주로 주변이 부서지고 망가지면 자기들 몸을 지키기 바빴다가, 내가 한차례 폭주가 끝나면 그제야 날 묶어두고 폭력을 행사했지. 마력제어는 강한 정신력에서 온다는 이유로 다들 내게는 폭력을 휘둘렀어. 덕분에 나는 많이 위축되어 있었고, 너무도 외로웠어. 오빠랑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루시, 많이 야위었네? 밥은 잘 먹고 있어?”
내 기숙사로 찾아온 오빠를 보고 너무 반가워서, 그날은 하루 종일 울기만 했어. 오빠는 날 위해서, 마법에 관련된 모든 것을 공부했고, 그 지식을 인정받아 마법협회에 입학하게 된 거야. 오빠는 나와 함께 기숙사를 사용하면서 내게 큰 위로가 되어주었어. 그리고 제어하는 방법에 관한 서적들을 알려주면서 내게 큰 도움이 되어 주었지. 오빠 덕분에 나는 조금씩 내가 가진 마력을 제어할 수 있게 되었어.
내가 마력을 제어하게 되면서 나는 마법협회에서 제일가는 마법사 중의 하나가 되었어. 조금 불안정하기는 했지만, 내가 제어할 수 있는 마법에 한에서는 내가 제일이었거든. 많은 사람들이 그제야 날 인정해줬고, 그러면서 날 시기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어.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오빠는 내 유일한 안식처였지.
그날은 오빠랑 같이 마법협회의 정원을 거닐던 중이었어. 어디선가 새가 시끄럽게 우는 소리가 들려서 가보니, 엠버, 저 새가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지 다리가 부려져 있더라고. 나는 그때 치료마법만큼은 특히 서툴러서 감히 마법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 오빠가 새에게 부목을 대주고 붕대로 감아 치료해줄 때까지도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 오빠는 새가 나을 때까지 우리 기숙사에서 잠시 키우자고 했고, 기숙사에는 엠버라는 이름을 가진 새가 함께하게 되었지. 이름을 지어주고 밥도 먹여주고 엠버는 금새 우리의 가족이 되었어. 애교가 많은 아이라 내 손에 얼굴을 부비며 애교를 부리곤 했고. 엠버라는 이름도 내가 직접 지어줬어. 노랗고 사랑스러운게 딱 엠버였거든.
엠버의 다리가 다 낫고, 오빠랑 나는 한차례 크게 싸웠어. 그새 정이 든 나는 엠버를 계속 키우고 싶었고, 오빠는 엠버에게도 가족이 있을 테니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했지. 처음으로 오빠와 싸웠어. 오빠는 날 다독이며 왜 엠버가 떠나야 하는지 설명했지만, 난 어린마음에 엠버를 보내기 싫어서 응석을 부렸지. 오빠의 말이 다 맞는걸 알지만, 오기를 부렸어. 그래서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 오빠가 밉다거나, 오빠도 나를 미워하지 않느냐는 말을 해버린 거야. 오빠는 크게 놀랐는지 평소랑 다르게 굳어버렸고, 나는 내 입을 틀어막고 자신을 원망했어. 결국 그동안 잘 억누르고 있던 마력이 폭주해버렸고, 그로인해 오빠도 엠버도 큰 부상을 입었어. 오빠는 괜찮다고 했지만 입으로 피를 토했고, 엠버는 더 이상 울지 않았어. 나는 혼란에 빠져 암흑으로 들어갔어. 아무도 날 찾지 못하게. 아무도 날 보지 못하게. 나 같은 건 없는 게 낫다고 생각했거든.
시간이 얼마나 지나갔는지 몰라. 그냥 혼자인 게 편했어. 아무도 없는게 좋았어.
“짹짹,”
엠버의 울음소리에 눈을 뜨자, 앳된 모습이 사라진 오빠의 모습이 보였어. 내가 3년을 잠들어 있었대. 그렇게 말하는 오빠는 말했어.
“엠버야. 예전과는 달라서 이제 튼튼해. 네 모든 마력을 견딜 수 있을 만큼 건강해. 평생 네 곁에 머물러 줄 소중한 친구가 되어줄 거야.”
그게 오빠의 첫 호문클루스 연구였어. 죽은 엠버의 육체에 마석으로 생명력을 넣었고, 마석을 견디게 하기 위해 육체에 변형도 가했지. 덕분에 내 마력을 모두 견딜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가 탄생한 거야. 하지만, 이미 죽었던 엠버는 과거의 기억을 갖고 있지 않았지. 더 이상 내 손에 얼굴을 부벼 주지 않았어. 아쉬웠지만, 이렇게 곁에 있어 준다는 것만으로 만족했어. 하지만 아쉬워하던 내 모습에 오빠는 호문클루스에게 인격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야.
**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말을 마친 루시는 막힌 숨을 뱉어내듯 눈물을 쏟아냈다. 클로이가 루시를 품에 안고 다독여주었고, 이 사단을 일으킨 그랜트는 스승님에게 크게 혼이 났다. 나는 엠버1호를 통해 루크와 잠시 대화를 나눴다.
“내 친구가 저지른 무례를 대신 사과할게. 그랜트는 지금 스승님에게 혼나고 있어. 루크. 넌 정말 멋진 오빠구나.”
“난 내 동생이 슬퍼하지 않길 바랄뿐이야.”
“나도 내 사람들이 슬퍼하는 걸 원치 않아. 그러니 네 마음을 다 이해할 수 있어.”
“흥,”
다행이도 루크는 조금 마음이 풀린 것 같았다. 나중에 그랜트에게는 크게 혼 줄을 내주겠다는 루크에게, 그 자리에 나도 꼭 불러달라고, 나도 돕겠다고 하자 루크는 큰소리로 웃었다.
한참을 울던 루시는 진정이 됐는지 클로이와 함께 서로를 붙들고 잠에 들었다. 아직 어린 소녀들. 과거 클로이를 향해 스승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직 어린아이일 뿐이라는 말. 루시도 그랬다. 그저 아직 어린 소녀일 뿐.
다음날 그랜트는 루시에게 정식으로 사과했다. 루시는 살짝 뚱한 표정을 하다가 환하게 웃더니 말했다.
“미안하면 책임을 져요. 나랑 사겨요.”
“루시!”
루크가 화를 냈지만, 루시는 되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루크를 놀렸다. 침묵하던 그랜트는 조용히 자신의 검을 뽑더니 땅에 꼽았다. 그리고 기사의 예를 하고서 말했다.
“나 그랜트는 루시 제이스 만을 위한 기사가 되겠습니다.”
말을 꺼냈던 루시도 모두 놀라 그랜트를 멍하니 바라봤고, 그랜트는 진지한 표정으로 루시를 바라봤다. 루시는 부끄러워하다가 자신의 오른손을 내밀었고, 그랜트는 루시가 건넨 손에 입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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