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평화로운 일상
영웅 일행의 무용담은 음유시인들을 통해 퍼져나갔다. 그들의 지원군이 되어주었다는 백작은 왕의 부름을 받아 왕궁에 입성했다.
“백작 에디스, 그대의 공을 칭해, 공작으로 지위를 상등한다.”
백작은 예를 갖추지 않고 왕을 향해 말했다.
“저는 지금의 지위가 좋습니다. 더 큰 지위를 바라고 한 일은 더더욱 아니죠. 그저 제 가족을 지키고 싶었던 한사람의 가장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명을 거두어주십시오.”
“허나, 백작, 자네의 공이 그리 큰데, 어찌.”
“그럼 제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용사 일행은 다들 제 가족과 다름없습니다. 그들을 그 전과 같이 제 집의 손님이니, 다들 방해하지 말아주십시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얼핏 공손하게 들리기는 했지만, 그 말은 결국, 왕가에서는 용사일행에 일체 간섭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왕은 백작의 조금은 당돌한 제안에도 차마 큰소리를 내지 못했다. 왕가도 마왕군의 위험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차마 나설 수 없었던 것은 왕가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었다. 왕가에 내려진 여신의 가호라면 조금이나마 나라를 위해 싸울 수 있었지만 철저히 외면했다. 결국 왕도 자신의 아들이 소중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왕을 뒤돌아 나가는 백작을 차마 잡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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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트와 루시는 결혼했다. 마왕을 처치하고 몇 주 뒤, 그랜트와 루시는 연애를 시작했고, 둘은 조용히 결혼식을 올렸다. 마왕군의 뒷수습을 맡았던 루크는 뒤늦게 소식을 접해 결혼을 반대하려고 했지만, 루시에게서 이미 아이가 자라고 있었기에, 결혼을 축하해 줄 수밖에 없었다.
루시의 배가 어느 정도 불렀을 즈음, 그랜트는 자신의 고향을 루시에게 소개해 주고 싶었다. 백작의 마차를 타고 도착한 마을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신전이 있던 자리는 상회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상회에서는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마을은 용사일행이 태어난 마을이라는 소문에 많은 여행객들이 오가는 관광명소가 되어 있었다.
그랜트가 살던 집은 이미 허물어져 새로운 집이 자리하고 있었다. 루크가 말하길, 그랜트와 그린이 사라진 뒤로 그들의 아버지들은 서로의 탓이라며 싸우다 서로의 목숨을 앗아 갔다고 한다. 그들의 남은 땅은 백작이 사들여 그랜트와 그린이 돌아올 때를 대비해 깨끗한 집으로 재건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집에서 그랜트와 루시는 신혼 생활을 지내기로 했다.
“루시의 아이가 곧 태어날 텐데 내가 가만있을 수 있나!”
루크는 곧 태어날 아기며, 루시가 걱정된다며 지금은 빈 집이 되어있는 그린의 집을 사용하기로 했다. 나중에 그린이 돌아올 경우를 대비해 보수도 완벽히 해둔 집이었지만, 자신이 쓰게 되어 미안했던 루크는 그린에게 사과를 했다. 하지만 그린은 오히려 잘 됐다며, 그랜트와 옆집이니 부담없이 오갈 수 있을거라며 웃었더랬다. 루크는 그런 그린의 털털함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린과 그랜트가 마을로 귀환할 때를 대비해 백작과 루크는 마을을 관광명소로 만들었다. ‘용사가 태어난 마을’이라는 타이틀은 꽤 좋은 관광명소가 될 수 있었고, 마을을 더 키우기 위해 백작은 상회도 꾸렸다. 그리고 백작은 루크가 마을로 가기로 한 날, 루크에게 상회에 관한 모든 전권을 넘겼다. 상회를 운영하면서 루시와 그랜트를 지원해주라며. 루크는 백작에게 고마워하며 인사를 건넸지만, 오히려 백작이 더 깊게 고개를 숙였다. 모든 전투를 지휘해준 자네에게 이렇게 줄 수 있는 선물이 있어 다행이라고 하면서.
루크는 상회를 크게 성장시켰다. 상회의 성장은 루크와 함께하는 12구의 호문클루스들의 몫이 컸다. 마왕성에서 데려온 악마 11구와 기존의 딜런으로 만든 호문클루스. 총 12구의 호문클루스는 과거의 욕망에 찌들은 난봉꾼들과 달랐다. 개화한 것처럼 마냥 착하고 친절한 존재들은 아니었지만, 일반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적어도 그들 마음속에 죄책감과 배려라는 것이 자리잡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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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가에는 백작과 백작부인, 클로이가 다정하게 살았다. 하지만 클로이는 자신이 과거 사라졌던 신녀라는 사실을 백작부인에게 전해들은 뒤부터 준비해온 것이 있었다. 여신 엘린을 위해 제대로 된 신전을 꾸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제 저는 신녀로 돌아가겠습니다.”
백작은 클로이의 바람을 듣고 백작가 근처에 새로운 신전을 세워주었고, 그 곳에는 신녀가 그동안 악을 저지른 신도들을 용서하고 회계한 자들을 다시 등용해 신전이 다시금 자리를 잡아갔다.
그리고 신녀의 바람대로 신전은 포용력있는 신전으로 자리잡아갔고, 백작과 백작부인은 늘 클로이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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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은 휘슬과 함께 여행 중이다. 몇 년을 휘슬과 함께 크고 작은 용병 일을 하며 많은 마을을 떠돌았다. 하지만 나이가 나이이다 보니 휘슬은 슬슬 은퇴를 하려 했고, 마지막 행선지는 휘슬이 태어났던 자신의 고향으로 향하기로 했다.
“이 곳이 내가 자랐던 마을일세. 조용하고 좋은 곳이지. 10년만인가. 마을도 많이 변했구먼.”
마을사람들은 모두 휘슬을 반겼다. 마을사람들은 모두 휘슬을 존경했고 좋아했다. 마을이 위기가 닥쳤을 때마다 휘슬은 직접 혹은 자신을 대신할 사람을 보내 마을을 구해준 은인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언제고 휘슬이 올 때를 대비해 매일 휘슬의 집을 청소하고 가꿨다. 덕분에 휘슬의 집은 세월에 의해 낡긴 했어도 깔끔하고 단정했다. 그린과 둘이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그런 곳이었다.
“그린, 자네 내 아들이 되는 건 어떤가?”
어느날, 휘슬은 그린에게 아들이 되어달라고 제안했다. 그린은 망설였지만 그린을 진짜 아들처럼 생각한다는 휘슬의 말에 그린은 휘슬의 아들이 되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그린은 휘슬의 성을 따라 ‘그린 와이엇’이 되었으며, 서로 아버지와 아들로 지내가 되었다.
그렇게 그린은 휘슬과 조금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삼개월, 평소와 다르게 늦잠을 자던 휘슬이 걱정되었던 그린은 아침을 차리고 휘슬을 깨웠다. 몇 번이고 휘슬을 깨우려고 했지만, 휘슬은 잠이 든 상태로 일어나지 않았다. 침대맡에 주저앉은 그린은 한참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