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장례식
스승님의 장례식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치렀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휘슬을 기리며 슬퍼했고, 3일 밤낮을 그의 넋을 위로했다. 스승님의 무덤은 마을의 언덕 위로 정했다. 과거의 내가 그랬듯, 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좋은 장소를 스승님이 찾아냈기 때문이었다. 그 장소를 특히 마음에 들어 했던 스승님은 자신이 죽으면 이곳에 묻어달라고 했다.
엠버1호의 연락으로 스승님의 무덤을 찾아 친구들이 찾아왔다. 처음 들른 것은 그랜트와 루시, 루크였다. 공간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던 루시는 연락만 조금 일찍 해주었다면 장례식도 참석할 수 있었을 거라며 아쉬워했다.
“아저씨한테 우리 딸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갓난아기를 품에 안은 루시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랜트처럼 노란빛의 머리를 가진 아이. 꼬물거리는 손이며 너무 귀여운 아이었다. 그랜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펑펑 울기만 했다. 루시는 아이를 내게 넘기고 그랜트를 꼬옥 안아주며 달래주었다. 이후로 언제든 필요하면 오고 갈 수 있도록 루시는 자신의 집과 스승님의 집에 포탈을 연결해 두었다.
조용히 묵념을 하며 넋을 위로하던 루크는 돌아가기 전, 엠버2호, 딜런을 내 곁에 주고 갔다. 혼자 있기는 적적할거라며, 그리고 이제 완전히 인간화가 진행된 딜런은 이제 과거와는 다르다고 했다. 난봉꾼 기질은 전혀 없었고, 남을 배려해주고 도와주는걸 즐겨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딜런과의 악연으로 거절하기도 했지만, 딜런이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졌고, 더구나 딜런이 곁에 있었다면 우리에게 미리 연락이 오가지 않았겠냐며, 루시가 많이 울었다는 루크의 말을 이길 수 없었다.
**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딜런과는 금세 친해졌다.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루크의 말이 사실이었던 듯, 딜런은 성실하고 털털한 성품을 갖고 있었다. 처음에는 서로 낯을 가렸지만, 이내 딜런이 하는 행동이 그저 표면적인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나는 마음을 열었다. 스승님이 쓰던 방은 내가 사용하게 되었고, 내가 쓰던 방을 딜런이 사용하게 되면서 우리는 꽤 좋은 친구가 되어 있었다.
포탈을 연결한 뒤로는 매일같이 그랜트며 루크가 자주 놀러왔다. 가끔 루시는 아이를 데리고 찾아와 아이를 맡기고는 시장을 놀러 다니는 등, 활달하고 당돌한 모습이 매력적이던 그녀는 여전했다. 물론 이렇게 놀고 있는 건 그랜트에게 비밀로 해달라는 말까지 잊지 않았다.
며칠 뒤, 여느 때처럼 루시가 놀러 왔다고 생각했지만, 의외의 손님들이 포탈로 찾아왔다. 바로 백작님과 백작부인, 그리고 클로이가 온 것이었다. 루크에게 소식은 들었지만, 클로이가 하던 신전의 일을 대신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시간이 걸렸다며 너무도 미안해했다.
백작님과 백작부인은 클로이가 홀로 가게 되는 것을 걱정해 늦지만 함께 왔다며, 친구였던 휘슬에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마을에 자리 잡고 마지막을 준비하고 계셨던 스승님은 편지를 하나 썼다. 그건 오로지 친구였던 백작님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나는 편지를 백작님께 전달했고, 편지를 읽은 백작님은 평소의 당당한 모습과는 다르게 흐느껴 울고 계셨다. 백작님의 눈물을 시작으로 백작부인도 클로이도 한참을 울고 말았다. 딜런과 나는 그들을 진정시키려 애썼지만, 그들의 눈물을 그치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백작님들과 무덤가로 향했고, 잘 관리된 무덤가를 보며 백작님은 내가 수고가 많은 것 같다며 어깨를 두들겨주었다.
“이 마을에 정착하고 스승님은 절 아들로 거둬주셨습니다. 아버지를 위해서 당연히 아들이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백작님은 휘슬에게 좋은 아들이 생겼다며 기뻐하시던 백작님은, 이내 내 걱정을 하셨다. 비록 딜런과 함께 있기는 하지만 이곳에서 계속 머물 것이냐며, 백작가에서 함께 생활하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곳에서 아버지의 무덤을 돌보며 마을의 용병으로 아버지처럼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백작님은 걱정되는 마음에 몇 번이고 백작가로 돌아가자로 되물었지만, 이내 백작부인께서 나서서 백작님을 말렸다. 그리고 조용히 우리를 지켜보던 백작부인께서 말했다.
“당신이 그린군을 걱정하는 거 알고 있어요. 저도 그린군이 친아들 같아서 함께 살고 싶지만, 그린군은 이곳에 머물기로 선택했으니, 우리가 강요해서는 안돼요. 그러니 차라리 그린군이 이곳에서 머물기 좋도록 당신이 손을 써보는 건 어때요?”
“손을 쓴다라.. 루크군과 좋은 방법을 고민해보도록 하지.”
이내 백작님과 백작부인은 밀린 일처리로 먼저 포탈로 이동했고, 클로이는 조금 더 아버지의 무덤가에 있고 싶다고하며, 저녁 식사 전에 돌아가겠다 했다. 클로이의 말에 백작부인은 환하게 웃으며, 살짝 파이팅, 이라는 말을 건넸고, 클로이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떠난 백작님과 백작부인을 뒤로 하고, 클로이는 발개진 얼굴을 식히며 말했다.
“딜런씨는 좀 어때요? 오빠는 호문클루스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졌었지요?”
“응, 하지만 역시 네 생각대로 딜런은 이제 완전히 달라졌어. 요즘은 허물어져 가는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니까? 과거라면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
내가 딜런을 떠올리며 뿌듯하게 웃어보이자, 클로이는 안심한 듯 환하게 웃었다. 스승님이 머물렀던 곳을 둘러보며,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며 클로이는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신전의 일은 많이 바빠?”
“아직까지는요.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라 어쩔 수 없죠.”
클로이는 내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몇 번이나 말을 하려도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나는 재촉하지 않았고, 클로이는 어색하게 웃어보이다 겨우 한마디했다.
“나중에, 모두 정리가 되면 그 때, 오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클로이는 한동안 마을을 찾지 않았다.
**
백작님이 돌아가고 며칠 뒤, 루크가 찾아왔다.
“너 길드 운영 안할래?”
대뜸 길드 운영을 언급하는 루크. 루크는 백작님과 논의한 끝에 나온 결과라며 말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지의 이름을 건 길드를 하나 만드려고 한다고. 그리고 이 마을은 아버지의 고향이기도 하니 그 길드의 시작이 되었으면 한다고.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백작님과 루크의 도움으로 우리 마을에는 ‘휘슬 길드 본점’이 세워지게 되었다. 길드는 루크의 호문클루스 친구들이 많이 도움을 주었고, 딜런과 함께 열심히 운영하고 있다.
클로이의 노력 덕분에 엘린님의 이미지는 과거와 달리 온화하고 자애로운 여신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런 클로이의 노력으로 엘린님은 힘을 많이 되찾아, 가끔씩 내게 대화를 걸곤 했다. 그리고 늘 고맙다 했고, 나는 내 친구들을 위한 일이었을 뿐이었노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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