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보이지 않기에 볼 수 있는 것

 

  4. 한 마나님의 방문

 

  평소와 같았던 날, 한 여인이 골동품점을 찾았다. 내 눈에 비치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그 들중 하나였다.

 

  [이 곳이 부탁을 들어준다는 곳인가요?]

 

  나는 그녀를 기린님께 안내했고, 그녀와 기린님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부탁을 위해 대가를 치를 수는 있느냐? 모든 것은 인과에 의한 것, 네가 갖고 있다는 미련도 모든 것도. 네 부탁에 크기에 따라 값도 달라진다.]

  [부탁만 들어주신다면 원하는 것을 드리겠습니다.]

  [좋다. 이야기 해보거라. 가격을 따져볼테니.]

 

  그 여인은 근처 마을의 마나님이었다. 병약했던 여인은 일찍이 아들 하나를 낳고 병사했고, 늘 홀로 남은 아들 걱정에 그 집에 머물러 있었다고 한다. 아들은 어린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딱딱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 마음 둘 곳이 없던 아이는 비뚤어져갔다고 한다. 그래도 자신의 혈육이기에 이뻤고 귀하기만 했다고. 그렇게 마냥 아들을 지켜보았는데,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아들과 또래였던 시종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아들은 또래였기에 그 시종아이를 자주 놀리곤 했다고 한다. 그러다 산에 놀러갔던 둘은 산에서 길을 잃었고, 집으로 돌아온 것은 아들 뿐이었다고, 결국 산에서 길을 잃은 시종아이를 찾아 헤맸던 사람들은 일주일이 지나서야 그 시종아이의 시체를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은 집에 메어있었기에 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는 모르나, 이후 죽은 시종아이가 아들에게 붙어, 아들은 미친 듯이 먹기만 한다고 한다. 먹고 게우고 먹고 게우고, 잠도 자지 않은 채 아이는 먹기만 한다고. 그 모습이 너무 걱정되었던 자신은 힘겹게 이곳까지 당도했노라 말했다.

  이야기를 듣던 기린님은 조용히 일어났다.

 

  [값은 네가 아니라 아들이 치러야겠구나. 안내하거라. 가자 흑아야, 홍화야.]

 

  여인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한 저택이었다. 기린님은 흑아는 말재주가 있는 아이가 아니니, 이 일은 네가 해야겠구나 라며 내게 말했다.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랐으나, 기린님은 자신의 말을 전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쿵쿵, 흑아씨는 문을 세게 두드렸고, 문을 열고 나오는 시종에게 말했다.

 

  “도와주러, 왔다.”

 

  문을 두드리던 기세와 다르게 어색하게 말하는 말투에, 왜 기린님이 내게 부탁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나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시종에게 기린님을 대신해 말했다.

 

  “집안에 우환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를 수상하게 여기던 시종은 들여보내주려고 하지 않았고, 어찌할 방도를 몰라 곤란해하던 차, 집의 주인으로 보이는 사내가 나타났다.

 

  “무슨 소란이냐!”

 

  여인은 자신의 남편이라고 소개했고, 기린님은 내 입을 빌어 밑져야 본전이니 한번 아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집의 주인은 조금 꺼림직하게 생각하면서도 이내 허락했고, 원망스러운 모습을 한 어린아이의 영혼이 보였다.

  기린님이 말을 걸자 유령아이는 눈물을 보이며 말했다. 억울하다고, 너무 괴로웠노라고. 네 억울함을 풀어주겠으니, 일단은 함께 이동하자고 했다. 한참을 원망스럽게 집의 도련님을 노려보던 유령아이는 이내 기린님을 따라 나섰다.

  그와 동시에 먹고 게워내기만 하던 소년이 지친 듯 잠에 들었다.

 

  “이제 더 이상 먹고 게워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간 지쳤기에 잠에 든 것뿐이니 건강을 되찾거든 거대한 매화나무 앞에 있는 골동품점으로 저희를 꼭 찾아오십시오. 이 값은 치러야 하실 겁니다. 만약 약속을 지키지 않으신다면 이 고통은 반복될 것입니다.”

 

  집의 주인은 기뻐하며, 당연히 그러겠다고 말했다. 유령아이는 집에서 나오기까지 원망스러운 눈으로 집을 노려보았다. 그런 유령아이에게, 여인은 깊게 고개를 숙였고, 그 모습을 보고 아이는 노여운 눈을 거두고 기린님을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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