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진실

 

  11. 첫 번째 과오, 신전의 욕심

 

  “잘못된 것들을 제가 말하는 것보다 그걸 직접 보여주는 게 빠르겠죠.”

 

  여신은 내 눈을 가렸다. 그리고 조용히 주문을 읊자 내 눈앞에 영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시작은 그들의 욕심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신녀가 태어나던 날, 여신은 직접 신전으로 내려와 신탁을 내렸다.

 

  “신녀가 태어났습니다. 그녀가 열다섯살이 되는 해, 마왕이 되살아날 것이며, 그를 없애기 위한 용사가 나타나 모두를 구원해줄 것입니다. 용사는 신녀가 일곱 살이 되는 해, 그가 누구인지 알려줄 것입니다. 신녀를 잘 돌보십시오. 용사를 도와 신녀가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신탁을 들은 신전은 서둘러 신녀를 신전에 들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여신이 직접 강림해 신탁을 내렸다는 사실만으로도 환의에 차있었다. 하지만 어린나이에도 엄청신 신성력을 사용하는 신녀를 보고, 신전은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용사가 나타나기까지는 앞으로 몇 년이나 시간이 있었고, 그때까지는 신전의 배를 불리는 것 정도야 어떻겠냐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들은 신녀가 가진 신성력을 이용해 신전의 이름으로 돈을 쓸어 모았다. 그럴만도 했던 것이 신녀가 사용하는 신성력은 그 어떤 치료마법보다 치유양이 대단했다. 신전도 처음에는 여신을 따르는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처럼 사용하다가, 신성력의 위엄이 점점 세상에 알려지면서 비싼 돈만내면 신성력을 이용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끔 변질되어갔다.

  신녀의 신성력이 세상에 알려진 가장 큰 계기는, 신녀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왕가의 마지막 핏줄인 황태자를 치유한 일이었다. 왕실의 모든 치유사들이 손을 놓고 죽을 날만 기다리던 황태자를 신녀가 신성력으로 회복시켰다. 그 일로 신전은 왕가의 비호 아래서 더 위세를 펼쳤다. 황태자를 살린 일로 더 오만해진 신전은 각 귀족들의 직계가 아닌 자식들을 신전의 귀속시켜 인질로 삼게끔 하는 등, 신전은 신전의 이름으로 해서는 안 되는 악행을 저질렀다.

  그렇게 신전은 신녀가 행하는 신성력에 빠져 신탁자체를 잊고 말았다. 원래의 계시대로라면 신녀가 일곱 살이 되던 해, 신녀가 용사를 지정해주어야 했다. 하지만 신녀는 용사가 누군지 알지 못했다. 이미 일곱 살이 되던 해, 용사가 누군지 여신을 대신해 말했지만, 여신이 신녀의 입을 빌린 것 뿐, 그게 누군지 신녀는 알지 못했다. 결국 마왕군과 대립하기 직전까지 가자, 여신은 자신의 힘을 쏟아 다시금 신탁을 내렸다.

 

  “용사는 신전마을에 사는 그린이라는 사내입니다.”

 

  신전은 서둘러 용사를 맞이하러 나섰다. 하지만 그린은 이미 훌륭한 농사꾼으로 자라있었고, 흙투성이에 밭을 가는 모습이 탐탁지 않았던 신전장은 대놓고 혀를 찼다. 그런 신전장 일행을 몰래 지켜보던 사내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가 개입하면서 일이 더 크게 틀어지고 말았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신전사람들을 유심히 살피다가, 슬쩍 말을 걸어온 사내는 그랜트의 아버지였다. 그랜트의 아버지는 특유의 말재간으로 신전장이 용사인 그린을 만나러 왔지만 탐탁지 못하다는 대답을 끌어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그랜트의 아버지는 속으로 환호성을 부르면서도 진지한 표정을 해보이며 말했다.

 

  “우리 아들은 검사요. 우리 아들을 용사라고 하는 것은 어떻소? 저런 흙투성이 어린애보다 훨씬 나을 겁니다.”

 

  그렇게 말한 그랜트의 아버지는 신전장과 일행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고, 그들이 보기에도 그랜트는 멋진 검사처럼 보였다. 인물도 훤칠하고 일찍부터 친부에게 검을 배웠으니 실력은 그럭저럭 알아줄 거라고 생각하며 흡족해했다. 하지만 그보다 신전장 일행의 마음을 돌린 것은 그랜트 아버지의 호화로운 대접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신전은 계시와는 달리 신전장의 마음대로 그랜트를 용사로 선정하기로 했고, 그렇게 그랜트의 아버지와는 비밀스러운 거래를 마쳤다.

  그리고 며칠 뒤, 그랜트의 아버지는 그랜트를 끌고 신전으로 향했다. 평소에는 신전에 기도한번 올리지 않았던 아버지를 따라 그랜트는 당황스러워했지만, 아버지를 거스르는 법이 없던 그랜트는 얌전히 그를 따랐다. 기도를 올리던 신전장은 갑자기 정색을 하며 소리질렀다.

 

  “용사가 태어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그랜트, 그가 여기 신전에 있군요. 오오, 용사시어.”

 

  그렇게 말한 신전장은 그랜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사람들이 이목이 그랜트를 향해 몰렸고, 그 짧은 사이 그랜트의 아버지와 신전장은 눈을 마주하고 살며시 웃었다. 그 퍼포먼스는 그랜트의 아버지가 원한 것이었다. 서로 이득이 된다고 생각한 신전은, 그리고 또 배를 한껏 불릴 거리라고 생각한 신전은 퍼포먼스를 화려하게 준비했다.

  갑자기 용사가 된 그랜트는 당황스러워하며 말도 안 되는 소리쯤으로 여겼다. 그런 그랜트의 모습이 신전에 눈에 찰 리가 없었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신전은, 그랜트의 아버지와 밀담을 나눴다. 그러던 와중 목소리가 커진 그랜트의 아버지가 칼을 휘둘렀고, 신전 사람들과 칼싸움이 오갔다. 아무리 전사라도 다수의 사람을 이기진 못한 법이니, 그 혼란에 의해 그랜트의 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했다. 신전측은 당황했지만 신전장이 냉정하게 말했다.

 

  “이건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탐욕에 가득한 신전장은 그랜트의 아버지가 마물에게 당한 것처럼 꾸몄고, 그들의 계획대로 그랜트는 용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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