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
나는 여신이 보여준 영상들과 여신의 말을 듣고, 더 이상 화가 나지는 않았다. 다만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이 많은 사람들의 욕심에 의해 어긋났다는 사실에, 허무해졌을 뿐이었다. 머릿속은 점점 멍해지고 모든 의욕이 사라져갔다. 여신은 그런 날 향해 슬픈 표정을 하며 말했다.
“용사 그린, 저는 여신, 신이란 존재는 자신을 믿는 자들의 기도와 신앙심으로 힘을 얻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신전이 제 이름을 빌어 한 악행들로 인해 저는 힘을 많이 잃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모두의 영혼을 구제하지 못했고 용사인 당신에게 내려진 가호의 힘을 빌어 이렇게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제게도 남은 힘은 있어요. 제 남은 힘을 쏟아 당신을 과거로 보내겠습니다.”
과거로 갈 수 있다? 그렇다면 그랜트가 죽는 걸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 스승님이 그렇게 허무하게 독살당할 일도 없을 것이다. 흐릿해졌던 눈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기억을 가진 채 과거로 돌아간다면,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제게 남은 힘이 많지 않아 당신이 언제의 과거로 가게 될지는 모릅니다. 원래대로라면 크게 어긋나기 시작한 당신의 5살 때로 돌아가야 하지만, 아마 불가능 할 거예요. 적어도 2년 이상의 차이가 나겠죠. 최악의 경우 당신이 죽음을 맞이했던, 그 마을로 돌아갈지도 모릅니다. 이건 모두의 인생을 건 마지막 내기. 저는 이 한번을 위해 제 남은 힘을 쏟을 겁니다.”
여신은 어긋한 모든 것들이 자신의 탓으로 여기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사실 여신이 잘못한 일은 없었다. 그저 사람들이 힘을 가지면서 생긴 욕심으로 인해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은 것일 뿐, 여신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내가 모두를 잃기 직전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우리를 배신한 악마가 누군지를 아니까 괜찮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랜트를 믿어요.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그랜트와 함께라면 이겨낼 자신이 있습니다.”
여신은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여신은 고맙다고 말하고는 주문을 외웠다. 다시금 잠에 들 듯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점점 깊어지는 어둠속에서 속삭이는 여신의 한마디가 들렸다.
“신녀를 잘 부탁합니다.”
무거운 눈꺼풀을 뜨자, 따사로운 햇볕이 눈에 들어왔다. 빛이 적응되지 않아 눈을 몇 번 깜빡이다 내 옆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참 뒤 빛에 적응된 내 눈에 비친 것은 낮잠에 든 그랜트였다. 이곳은 내가 만든 비밀장소. 그랜트가 살아있다. 그랜트가. 나는 늦지 않았다는 사실에, 아직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계속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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